대법원 판례(비트코인 이체 사건)로 보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판단 기준
가상자산 비트코인 이체 사건에서 배임죄 성립 여부를 다룬 대법원 2020도9789 판결을 해설합니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적용 가능성, 가상자산의 법적 성격, 민사와 형사 책임의 경계를 구체적으로 분석했습니다.
목차
1. 가상자산과 형사법 적용의 새로운 논쟁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자산은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한 디지털 자산으로,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거래와 투자에 활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상자산은 법정화폐와 달리 제도적 통제가 부족하고 거래 방식이 특수하기 때문에 법적 분쟁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습니다. 특히 가상자산을 무단으로 이체하거나 취득한 경우 배임죄나 횡령죄가 성립할 수 있는지는 실무상 중요한 쟁점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대법원 2021. 12. 16. 선고 2020도9789 판결을 중심으로 관련 법리를 분석해보겠습니다.
2. 관련 판례의 사건 개요와 사실관계
이 사건의 피고인은 알 수 없는 경위로 피해자의 비트코인 지갑에서 본인의 지갑으로 코인을 이체받은 뒤, 이를 다시 다른 계정으로 전송하여 재산상 이익을 취득했습니다. 검찰은 피고인을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배임)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원심은 피고인이 피해자의 가상자산을 반환할 의무가 있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에 법리 오해가 있다고 보아 원심판결 전부를 파기하고 사건을 환송했습니다.
대법원 2021. 12. 16. 선고 2020도9789 판결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횡령)[인정된 죄명: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배임)]]
판시사항
[1] 가상자산 권리자의 착오나 가상자산 운영 시스템의 오류 등으로 법률상 원인관계 없이 다른 사람의 가상자산 전자지갑에 가상자산이 이체된 경우, 가상자산을 이체받은 사람이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가상자산을 보존하거나 관리하는 지위에 있는지 여부(소극) / 가상자산이 ‘재산상 이익’에 해당하는지 여부(적극) 및 가상자산에 대해 형법을 적용하면서 법정화폐와 동일하게 보호해야 하는지 여부(소극) / 원인불명으로 재산상 이익인 가상자산을 이체받은 자가 가상자산을 사용·처분한 경우, 신의칙을 근거로 배임죄로 처벌할 수 있는지 여부(소극)
[2] 피고인이 알 수 없는 경위로 갑의 특정 거래소 가상지갑에 들어 있던 비트코인을 자신의 계정으로 이체받은 후 이를 자신의 다른 계정으로 이체하여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고 갑에게 손해를 가하였다고 하여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배임)의 예비적 공소사실로 기소된 사안에서, 비트코인이 법률상 원인관계 없이 갑으로부터 피고인 명의의 전자지갑으로 이체되었더라도 피고인이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갑의 사무를 맡아 처리하는 것으로 볼 수 없는 이상 갑에 대한 관계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한 사례
판결요지
[1] 가상자산 권리자의 착오나 가상자산 운영 시스템의 오류 등으로 법률상 원인관계 없이 다른 사람의 가상자산 전자지갑에 가상자산이 이체된 경우, 가상자산을 이체받은 자는 가상자산의 권리자 등에 대한 부당이득반환의무를 부담하게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당사자 사이의 민사상 채무에 지나지 않고 이러한 사정만으로 가상자산을 이체받은 사람이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가상자산을 보존하거나 관리하는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없다. 가상자산은 국가에 의해 통제받지 않고 블록체인 등 암호화된 분산원장에 의하여 부여된 경제적인 가치가 디지털로 표상된 정보로서 재산상 이익에 해당한다. 가상자산은 보관되었던 전자지갑의 주소만을 확인할 수 있을 뿐 그 주소를 사용하는 사람의 인적사항을 알 수 없고, 거래 내역이 분산 기록되어 있어 다른 계좌로 보낼 때 당사자 이외의 다른 사람이 참여해야 하는 등 일반적인 자산과는 구별되는 특징이 있다. 이와 같은 가상자산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관련 법률에 따라 법정화폐에 준하는 규제가 이루어지지 않는 등 법정화폐와 동일하게 취급되고 있지 않고 그 거래에 위험이 수반되므로, 형법을 적용하면서 법정화폐와 동일하게 보호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원인불명으로 재산상 이익인 가상자산을 이체받은 자가 가상자산을 사용·처분한 경우 이를 형사처벌하는 명문의 규정이 없는 현재의 상황에서 착오송금 시 횡령죄 성립을 긍정한 판례를 유추하여 신의칙을 근거로 피고인을 배임죄로 처벌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에 반한다.[2] 피고인이 알 수 없는 경위로 갑의 특정 거래소 가상지갑에 들어 있던 비트코인을 자신의 계정으로 이체받은 후 이를 자신의 다른 계정으로 이체하여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고 갑에게 손해를 가하였다고 하여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배임)의 예비적 공소사실로 기소된 사안에서, 비트코인이 법률상 원인관계 없이 갑으로부터 피고인 명의의 전자지갑으로 이체되었더라도 피고인이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갑의 사무를 맡아 처리하는 것으로 볼 수 없는 이상 갑에 대한 관계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와 달리 보아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원심판단에 배임죄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관한 법리오해의 잘못이 있다고 한 사례.
3.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과 대법원 판례의 핵심 법리
본 사건의 적용 법령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입니다. 대법원은 가상자산의 성격과 형사법 적용 가능성을 집중 검토했습니다. 가상자산은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한 디지털 정보로 경제적 가치를 가지며, 재산상 이익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법정화폐와 달리 국가의 통제를 받지 않고 법률상 동일한 보호를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거래 과정에서 제3자가 개입하거나 소유자의 신원이 익명으로 유지되며, 분산원장에 기록되는 특성이 있어 일반적인 재산과는 구별된다고 설명했습니다.
4. 가상자산의 법적 성격과 전통적 재산과의 차이
대법원은 가상자산을 법정화폐와 동일한 재산으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국가의 통제를 받지 않음
2) 거래 내역이 블록체인에 기록되지만 익명성 보장
3) 제3자의 개입이 빈번하다는 점
이러한 특수성 때문에 가상자산은 전통적 의미의 재산과는 다른 법적 취급을 받아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였습니다.
5. 배임죄 성립 요건과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 개념
배임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피고인이 피해자와 신임관계를 바탕으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해야 합니다. 즉, 타인의 재산을 보호하거나 관리할 의무가 존재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피고인과 피해자 사이에는 신임관계나 계약관계가 없었고, 따라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대법원은 보았습니다. 민사적으로는 반환 의무가 발생할 수 있으나, 이를 근거로 형사상 배임죄를 적용할 수는 없다는 것이 판결의 요지입니다.
6. 착오송금 판례와 가상자산 사건의 차이점
대법원은 착오송금 사건 판례와 비교해 설명했습니다. 착오송금의 경우, 자금의 송금인과 수취인이 명확히 특정되어 있고, 반환 의무를 위반하면 배임죄가 적용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상자산은 송금인의 신원을 확인하기 어렵고, 거래 과정이 불분명하며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이 많습니다. 따라서 착오송금 판례를 그대로 가상자산 사건에 유추 적용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반한다고 보았습니다.
7. 가상자산 사건에서 민사와 형사의 경계 및 향후 법적 영향
대법원은 비트코인을 피해자로부터 이체받은 행위가 법률상 원인 없이 이루어진 것임은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민사상 부당이득 반환의 문제일 뿐, 형사상 배임죄로 확대할 수는 없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즉, 피고인의 행위는 민사 책임의 영역에 국한되며, 형사 처벌을 적용하는 것은 법리적으로 과도하다는 것입니다.
이번 판례는 가상자산의 법적 성격을 반영하여, 민사적 책임과 형사적 책임의 경계를 명확히 설정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배임죄의 요건을 엄격히 해석하여 무분별하게 형사범죄가 적용되는 것을 방지했고, 향후 가상자산 사건에서 법적 안정성을 확보할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또한 앞으로 가상자산 관련 분쟁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대법원이 이번 판결에서 보인 태도는 가상자산을 무조건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기보다 그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이는 기업과 개인이 가상자산을 보유하거나 거래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법적 위험을 예측하고 대비하는 데 중요한 참고가 될 것입니다.